축잘알이 되기 위한 두 걸음, 80년대 후반 세리에A는 어땠는가? -밀란편-

xn4IW124 0 0 09.15 12:31

축잘알이 되기 위한 첫 걸음, 80년대 세리에A는 어땠는가? 시리즈

1편 : https://m.fmkorea.com/2954492430

2편 : https://www.fmkorea.com/2955030378

3편 : https://www.fmkorea.com/2956059329

4편 : https://www.fmkorea.com/2961444051


들어가기에 앞서

  86-87 시즌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80년대 초를 수놓았던 많은 슈퍼 스타들이 쇠퇴하거나 사라졌다. 그리고 마라도나를 앞세운 나폴리가 세리에A의 새로운 강자가 되었다. 이에 대항하여 다른 세리에A 클럽들도 쇄신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잠재력 있는 유망주들을 앞세우거나 새로운 외인을 데려오며 사라진 슈퍼 스타들의 대체하고자 했고 그 결과 나폴리에 맞설 수 있는 몇 개의 클럽이 등장했다. 대항마들의 등장은 세리에A의 우승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고 아마도 앞선 시기의 유벤투스와 로마가 경쟁을 했던 때보다 더 치열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치열한 스쿠데토 경쟁을 했던 클럽들을 소개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시간 순에 따라 시즌별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해당 클럽들이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잘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걸음' 시리즈부터는 클럽 별로 나누어 설명할 예정이다. 가장 먼저 소개할 곳은 AC 밀란이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축구사 중 가장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팀이며, 8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강팀이다.


AC 밀란의 이야기는 마라도나와 나폴리가 이탈리아를 제패한 1986-87 시즌보다 조금 앞선 시점에서 시작한다.....



미스터 밀란 베를루스코니

 그레놀리 삼총사와 리베라로 대표되는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의 명문 AC 밀란이었으나 70년대 말 스쿠데토를 얻어낸 뒤, 토토네로 스캔들에 연루 된 후로는 두 번의 강등을 겪으며 빛나던 명가의 힘을 잃고 말았다. 디 바르톨로메이나 파올로 로씨 같은 슈퍼스타가 머물기도 했으나 그들의 모습은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노인이 앉는 안락 의자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전락해버린 AC밀란이었으나 변화의 시작은 한 순간에 찾아왔다. 1986년 3월 14일, 85-86 시즌이 한창이던 와중에 사업가 베를루스코니가 밀란을 인수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자 공격적인 투자가 감행된다. 슈퍼스타 파올로 로씨를 내보내고 아주리의 주전 GK였던 지오반니 갈리, 로마의 황금기 주전 수비수 보네티, 84-85 스쿠데토 베로나의 주전 공격수 갈데리시를 영입하였고 거기에 더해 좋은 선수로 평가 받던 마싸로와 85-86 시즌 아탈란타의 핵심으로 뛰며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별이 된 도나도니를 데려 온 것이다.


 그러나 투자에 비해 못 미치는 5위의 성적으로 리그를 마감했다. 영입 선수 중 가장 기대받던 도나도니는 86-87 시즌 가장 실망스러운 선수에 플라티니, 루메니게와 함께 뽑힐 정도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고 시즌 막판, 감독 리드홀름은 경질되기도 했다. (카펠로가 임시로 26라운드부터 30라운드까지 감독)


 어디 첫술에 배부를 쏘냐? 밀란의 투자는 계속되었다. 87년 여름, 밀란은 스쿼드 정리를 감행한다. 지난 여름에 영입한 보네티, 갈데리시를 내보내고 디 바를톨로메이도 방출한다. 또, 기존의 두 외국인 용병을 내보내고 새로운 용병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새로운 용병으로 온 것은 PSV에서 뛰며 최고의 유러피언 선수로 불리기 시작한 굴리트와 86-87 컵위너스컵의 활약을 통해 떠오르는 젊은 공격수 반 바스텐이었다. 굴리트는 마라도나의 최고 이적료 기록을 갱신하며 밀란으로 이적했고, 반 바스텐은 계약 기간이 얼마남지 않아 굉장히 싼 값으로 영입되었다. 이 밖에 로마의 핵심 미드필더인 안첼로티와 우디네세 미드필더인 콜롬보를 영입하였다.

(여담으로 당초 계획된 공격수 영입은 게리 리네커였으나 베를루스코니의 결정으로 반 바스텐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놀라운 변화는 따로 있었으니 세리에A 감독 경험이 없던 아리고 사키를 새 사령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아리고 사키는 훗날 '사키이즘'을 통해 축구사에 거대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평가 받으나 이 당시만 해도 떠오르는 신예 감독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마치 밀란으로 오기 전 칼리아리 감독을 맡고 있던 알레그리와 같던 셈이다.


아리고 사키와 4-3-3

  아리고 사키가 세리에 A 첫 무대에서 꺼내든 포메이션은 4-3-3이었다. 오늘날 4-4-2로 유명한 아리고 사키가 처음에는 4-3-3을 썼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놀라운 것일텐데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포워드에 비르디스(마싸로) - 반 바스텐 - 굴리트를 놓고 미드필더는 도나도니(마싸로) - 안첼로티 - 콜롬보로 구성했었다. 아리고 사키가 4-4-2를 사용한 것은 마르코 반 바스텐이 5라운드 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뒤로, 그 때부터는 굴리트와 비르디스로 이뤄진 2명의 공격수를 4명의 수비수와 4명의 미드필더 앞에 사용했다.

 또, 하나의 사실은 아리고 사키의 4-4-2는 플랫한 형태로 유명하지만 초기에는 꼭 플랫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초기의 4-4-2는 넓은 다이아몬드의 형태로 구성하여 위쪽 꼭지점에는 도나도니를 두고 아랫쪽 꼭지점에는 안첼로티나 다른 선수를 두었었다. 이 때 도나도니와 안첼로티 사이의 거리는 꽤 가까웠다.



굴리트와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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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의 밀란은 마라도나가 있는 나폴리에 도전을 하는 팀이었고 굴리트가 중심이 되었다. 굴리트는 특유의 빠르고 강한 피지컬을 앞세운 플레이를 선보이며 기세 좋게 밀란을 이끌고 나갔는데, 그의 플레이는 마라도나와 필적할 수준이었다. 

(참고자료. 굴리트가 마라도나의 라이벌이었던 이유 : https://www.fmkorea.com/best/2945080171)


 굴리트는 마라도나와 맞붙은 두 번의 대결에서 모두 골을 넣으며 이겼다. 특히나 28라운드에서 맞붙어 이긴 결과로 밀란은 시즌 내내 1위를 유지하던 나폴리를 누르고 리그 1위가 될 수 있었다. 덕분에 밀란은 1987-88 시즌의 스쿠데토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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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9 시즌 굴리트 평점 및 리뷰

 그러나 굴리트의 마법은 오래가지 못 했다. 88-89 시즌부터는 잔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하여 리그에서는 고작 19경기만 나섰다. 출전했던 19경기도 전 시즌만큼 인상적인 것은 아녔다. 87-88 시즌의 굴리트가 가제타로부터 평점 8점 이상을 세 번이나 받을 정도로 대단했다면, 88-89 시즌의 굴리트는 단 한 차례도 받지 못 했었다. 이 시즌의 밀란은 리그 3위를 기록했으나 유로피언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때 굴리트의 활약이 빼어난 것은 아녔다. 이듬해, 밀란은 유로피언컵에서 2연패를 하게 되는데 굴리트는 88-89 시즌 말미에 얻은 부상 때문에 시즌 전체 단 세 경기만 뛰었다.



마르코 반 바스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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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9 시즌 밀란 선수단 유로피언컵 평점


 굴리트가 부상으로 주춤하는 동안 밀란을 이끌어 갔던 것은 마르코 반 바스텐이었다. 87-88 시즌 중 발목 부상을 겪게 된 탓에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었으나 88-89 시즌에는 영웅으로 거듭났다. 유로피언 컵 9경기 동안 모두 10골을 넣었는데, 모든 상대팀에게 득점을 하는데 성공했고, 유로피언컵에서 10골 이상을 넣고 우승을 하는 것은 62-63 시즌 알타피니 이후 처음이었다. 이 때의 강렬한 활약으로 반 바스텐은 1989년 발롱도르의 위너가 될 수 있었다.

 굴리트가 없던 89-90 시즌에는 반 바스텐의 중요성은 더 높아졌다. 시즌 초반, 반 바스텐마저 부상으로 결장 했을 때는 밀란은 리그 5위였으나 반 바스텐이 돌아와 19경기 동안 18골을 넣으며 맹폭격을 가하자 리그 1위를 유지하고 있던 나폴리를 제치고 리그 1위가 되었다. (리그 24 라운드, 나폴리와 대결에서 승리로 1위가 되었다. 반 바스텐은 이 때 득점에 성공했다.)

 언론에서는 반 바스텐을 마테우스, 마라도나와 대등하게 두어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했다. 

(참고 자료. 89-90 시즌 반 바스텐, 마라도나, 마테우스 비교 : https://www.fmkorea.com/2909866967) 


1990 베로나의 저주

 반 바스텐이 이끌던 89-90 시즌의 밀란은 유로피언컵 결승과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도 오르며 트레블을 목전에 두고 있던 팀이었다. 그러나 한 순간 트레블의 꿈이 무너지고 마는데... 밀란의 꿈이 무너진 것은 세리에 33라운드 베로나 전에서였다. 

 밀란은 1위이긴 했으나 인테르전과 유벤투스 전의 패배로 2위 나폴리에게 다급하게 쫒기고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진다면 스쿠데토가 물 건너 갈 수 있는 순간. 그래서 33라운드 베로나 전은 반드시 이겨야 했다. 그러나 심판의 판정은 이상했고 밀란은 두 번의 PK를 모두 받지 못 한다. 결국 밀란은 2대1로 지고 말았다. 레이카르트는 심판에게 침을 뱉다가, 반 바스텐은 심판에게 항의하다 옷을 벗어 던져 퇴장당했다. 코스타쿠르타는 참다 못 해 심판에게 욕설을 내뱉어 레드 카드를 받았다. 

 훗날, 반 바스텐은 이를 두고 도둑 맞은 스쿠데토라고 회상한다. 이 경기가 있은 직후 밀란은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도 지고 만다. 오로지 유로피언컵에서만 우승을 했다.

(참고 자료. 1990년 베로나 전 : https://www.fmkorea.com/2796487767)


*베로나의 저주라고 불리는 이유는 과거 밀란이 베로나 전의 패배로 우승을 놓쳤던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리고 사키 vs 반 바스텐

 반 바스텐은 89-90 시즌 말미부터 큰 슬럼프에 빠졌다. 90월드컵을 무득점으로 마쳤고 90-91 시즌에도 활약이 크지 않았다. 장기간의 부상 이후 복귀한 굴리트도 예전과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두 핵심 선수의 부진 속에 90-91 시즌의 밀란은 무관으로 마감한다. 한편, 아리고 사키와 선수단의 갈등은 심해졌다. 오늘날 '사키이즘'이라 불리는 강한 압박과 공간에 대한 지배, 공격적인 축구를 이상향으로 잡던 사키는 전술의 실현을 위해 가혹한 훈련을 선수단에게 요구했었다. 이 즈음에 밀란 선수단 사이에서는 사키 감독이 자신들의 선수 생명을 갉아 먹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리고 불만을 가진 선수단의 중심에는 반 바스텐과 레이카르트가 있었다.

 그동안 사키와 선수단 사이를 조율을 했던 것은 굴리트였다고 한다. 그러나 굴리트의 리더쉽과 중재로도 선수단의 불만을 억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폭발한 반 바스텐은 갈리아니 선수 단장을 찾아가 말했다고 한다.


" 나인지 아니면 아리고 사키인지 선택해라"


 갈리아니는 반 바스텐을 선택했다. 아리고 사키는 90-91 시즌을 끝으로 밀란을 떠났고 카펠로가 후임 감독이 되었다.



사키 밀란의 전력과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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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가장 위대한 클럽팀을 뽑으라면 TOP5에 당연한 듯 들어가는 것이 사키&카펠로 밀란이나 사키 시절 밀란의 전력과 강함은 위대한 명성으로 인해 때로는 과장된 평가를 받기도 한다.(사키 밀란은 유로피언컵 2연패를 할 수 있을 만큼 강했지만, 스쿠데토는 단 한 번만 얻은 사실은 잊혀진 채 원래 가진 강함보다 이상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마치 당대에 경쟁할 팀이 없었던 불세출의 전력을 가진 팀마냥 너무 과하게.)

 사키 밀란의 선수단이 과장된 평가를 받을 때는 선수 개개인의 면면을 들어 강함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굴리트, 반 바스텐, 레이카르트로 이뤄진 튤립 삼총사와 말디니-바레시-코스타쿠르타-타쏘티로 이뤄진 강력한 포백을 예가 된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한가 하면 굴리트는 87-88 시즌 이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부상으로 날려버린 시즌도 있다. 반 바스텐은 계속 성장하고 있던 젊은 공격수였다. 말디니와 코스타쿠르타는 20대 초반의 어린 수비수들이었다. 그러나 과장된 평가를 받을 때는 모두가 전성기 기간 동안에 한 자리에 빠짐 없이 모여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가 된다. 특정한 시간대의 선수들을 커리어가 끝난 뒤 최종적인 평가나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투영해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고 사키가 가져온 '사키이즘'이라는 전술 시스템도 때로는 강함에 관하여 과장된 평가를 받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키이즘이 '최신 전술'이라는 것이 곧 강함의 비결로 이어지는데, 최신이 무조건 최고는 아녔다. 사키 밀란이 자랑하던 강력한 전방 압박은 골키퍼가 백패스를 손으로 잡을 수 있었던 80년대 후반에는 효율이 떨어지는 방법이었다. 다만, 처음 이 전술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는 상대팀 모두가 당황했고 골키퍼를 향한 백패스를 통해 밀란의 전방 압박을 피한다는 발상을 쉽게 못 했던 것이다. 사키 밀란의 일원으로 뛰었던 안첼로티는 사키의 전술에 처음에는 상대 모두가 당황했지만 이후에는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한 바가 있다. 사키 밀란이 4시즌 중 오직 첫번째 시즌에만 스쿠데토를 얻었던 것은 이런 점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결과만 중요하다고 하면서, 미래에 남는 건 커리어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축구의 위대함을 찾아 나설 때 얻어지는 느낌이다. 가령, 비록 파비오 카펠로의 AC 밀란이 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우리는 아리고 사키의 AC 밀란을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호르헤 발다노-


 사키 밀란이 위대하게 평가 받는 이유는 실질적인 강함과 커리어보다는 사키 밀란의 축구가 주었던 강렬한 인상 때문이다. 축구가 점점 갈수록 수비적으로 바뀌어 가던 시기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축구를 선보였으며 시대를 앞지르는 전술적 헤게모니를 남겼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사키 밀란의 축구는 일전에 없던 무언가 새롭고 강렬한 것이었으므로 오늘날까지 위대하게 회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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