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쏘아올린 전 국민 기본소득제 논쟁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동의하기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홍 부총리는 16일 ‘한국 경제·사회가 나아갈 길’을 주제로 열린 미래경제문화포럼에서 “전 세계에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가 없고, 언급할 정도의 상황도 아니다”고 했다. 기본소득에 관한 참석자의 질문에 그는 “전 국민에게 30만원씩만 줘도 200조원이 된다”며 “200조원을 더 거둬서 우리 아이들이 부담하게 하는 게 맞냐”고 반문했다.
최근 여야 가리지 않고 연간 수백조원이 들어가는 기본소득제 논의에 군불을 때자 재정당국 수장인 홍 부총리가 공개 반론을 펼친 것이다. 홍 부총리는 “의료 등 어려운 사람에 대한 지원을 다 없애고 전 국민 빵값으로 일정한 금액을 주는 것이 더 맞냐”고 되물으며 “1등부터 5000만 등까지 나눠서 1등에게도 빵값 10만원을 주는 게 나을지, 일자리 시장에서 밀려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는 지금 복지체계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국민에게 20만~30만원씩 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도 했다.
홍 부총리가 ‘전 국민’ 화두를 가지고 정치권과 대립각을 세운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21대 총선을 전후해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싸고서다. 당시 홍 부총리는 소득 하위 70% 지급을 고집했지만 표를 의식한 여야 모두 100% 지급을 주장했다. 청와대 내부 기류가 전 국민 지급 쪽에 쏠리고, 정세균 국무총리가 ‘굳히기’에 나서면서 홍 부총리는 한발 물러서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재로서는 (기본소득 도입을) 논의하기에 이르다”는 청와대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상당한 기간과 수준을 정해 토론을 먼저 해야 한다”며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본격적인 고민을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홍 부총리가 “지금 복지체계에서 기본소득제는 불가능하다”며 “지금은 복지체계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를 같이 논의해야 하는 게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홍 부총리의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중앙일보 분석에 따르면 전 국민에게 30만원씩 매달 주려면 연간 186조6000억원이 든다. 지급 과정에 투입되는 행정비용까지 고려하면 200조원에 육박하는 재원이 필요하다. 게다가 긴급재난지원금처럼 일회성이 아니라 매년 들어가는 돈이다. 홍 부총리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제를 국민투표에 부쳤지만, 기존 복지체계를 바꾸는 과정에서 형평성이 어긋날 것을 우려해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경제학계의 우려도 홍 부총리 주장과 결이 비슷하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지정책의 실패를 반성하지는 않고 오히려 ‘모두에게 다 줘버리자’는 논의로 빠지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은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의 선례처럼 한번 지급하면 후퇴가 불가능하다”며 “정치권의 논리보다는 경제적 논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도 “말 그대로 소득이 되려면 충분한 액수가 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기초연금·아동수당 등 기존의 복지체계를 기본소득제로 편입하는 것뿐 아니라 어떤 세금을 얼마나 더 거둘지에 대한 증세 논의도 불가피하다”며 “지금도 못 하고 있는 복지체계를 완비하고 비어 있는 고용 안전망을 채우는 것이 먼저”라고 제언했다.
세종=조현숙·임성빈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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